손을 씻지 않고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2019.08.21  (수) 09:22:09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bgusp@newsmp.com)
우두둑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마른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라기보다는 무언가 부러질 때 나는 소리 같았다.

손가락을 눌러 나는 소리이거나 팔뚝이 부딪혀 망가질 때 나는 소리 같기도 했다. 나는 섬뜩했다. 뒤로 물러 나볼까 생각했다.

잡은 손을 놓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손을 털고 일어서면 그 뿐이었다. 그 짧은 시간에 여려 상념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 가운데 하나는 지금 뱀의 상태였다. 비늘을 반대 방향으로 세워 놓고 최대한 버티기에 들어간 뱀의 상태 말이다. 그 상태로 더 버틸지 아니면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자포자기할지 알 수 없었다.

더구나 우두둑 소리가 난 것으로 보아 뱀의 몸통 여기저기가 떨어져 나갔을 수도 있다. 뱀이 측은했다. 설악산 공룡능선의 깊은 능선에서 누군지도 모르는 놈팽이에 걸려서 죽임을 당하는 뱀의 신세는 딱했다.

내가 뱀을 죽일 자격이 있는지도 의심스러웠다. 녀석은 나를 공격하려 했던 것이 아니고 제 갈 길을 가다가 재수 없게 나와 맞닥뜨린 것뿐이다. 하필 그 시간에 거기를 지나친 것은 생과 사를 가르는 운명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었다.

가도록 그냥 내버려 두면 됐을 것이다. 보기에 좀 흉하고 몸에 독을 품고 있다고 해서 내가 비난받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더구나 이유 없이 제 명대로 살지 못하는 것은 너무 억울한 일이다. 흉하기로 말하면 나보다 더한 것들이 세상에 얼마든지 있다.

독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왜 나만 보면 사람들은 죽이려고 난리인가. 내가 사과로 유혹한 원죄가 있다고 해도 그것은 벌써 옛일이 아닌가.

수천 년 하고도 몇 날 며칠이 더 지난 아주 까마득한 과거를 가지고 책임을 묻는 것은 당치 않는 일이다. 뱀의 원통함을 나는 이해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뱀을 놓아주기로 했다.

그가 몸의 나머지 반도 구멍 속으로 들어가 안식을 취할 수 있도록 잡은 손을 놓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 전에 나는 뱀의 촉감을 한 번 더 느껴 보기로 했다. 그래서 잡은 손의 위치를 뒤쪽으로 조금 옮겼다. 꼬리 쪽이다.

느낌상으로는 굵기가 작아졌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으나 그 아래쪽은 지금 내가 잡고 있는 쪽에 비해 온기가 덜했다. 차가움을 인식할 정도는 아니었으나 미지근한 정도도 아니었다.

나는 뱀을 한 번 쓰다듬어 보는 시늉을 냈다. 손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그때 뱀은 기회를 알아채고 쑥 하고 손에서 미끄러져 나갔다.

미끄러지는 뱀의 꼬리가 다섯 손가락으로 전해져왔다. 다행이다. 놈이 승리했다. 대결에서 놈은 스스로 인간의 손을 빠져나왔다.

나는 놈에게 승리를 주었고 나는 패배했다. 뱀이 구멍 속으로 몸을 숨긴 뒤에 나는 뱀 구멍을 한 번 쳐다 보았다. 수풀을 발로 이리저리 밟고 그 주변을 넓힌 다음 보니 뱀의 구멍치고는 제법 컸다.

그것이 뱀의 집이 아닐지도 몰랐다. 그러나 나는 개의치 않고 등산로 쪽으로 내려왔다. 뱀을 잡은 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조금 난감했다. 씻지 않고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여기는 산의 능선이다. 물이 흐르는 계곡은 아주 멀리 아래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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