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을 활짝 폈다고 나무랄 사람은 없었다

2019.09.09  (월) 13:08:48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bgusp@newsmp.com)
다음날 보라고 누가 하지 않았지만 나는 장엄한 동해의 일출을 기다렸다.

간밤은 잘 잤다. 그래서 눈이 떠졌고 사방이 붉어지기 전에 어제 앉았던 바위 턱에 기대어 섰다.

누구의 앞길도 아닌 나의 앞길을 밝히는 일출이 기가 막혔다. 저절로 유행가가 막 떠 올랐다.

보라, 떠오르는 태양은 니체가 알프스에서 보았던 그 태양과 견주고도 남았다. 한동안 그렇게 품을 열고 붉은 기운을 들이 마셨다.

지금은 휴가가 아닌가. 이런 호사는 누려도 됐다. 누구나 있는 휴가기간 동안 아무도 없는 깊은 산 속에서 동해의 떠오르는 태양을 보면서 가슴을 활짝 폈다고 해서 누가 나무랄 사람이 있겠는가.

그렇게 여유를 부리면서 싸 온 커피를 물에 타서 마셨다. 온기는 식었지만 미지근해도 상관없었다. 이런 순간은 일생에서 몇 번을 맛볼 수 있을까.

다 가진 자의 넉넉함이란 이런 것이다. 호흡을 가다듬고 나는 바위에서 내려왔다. 사위가 사그라들고 있었고 붉은 기운은 넓게 퍼지면서 엷어졌다.

서둘러 텐트를 걷었다. 둘둘 말아 배낭에 집어넣고 주변을 훑어보았다. 빠진 것이 없나 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쓰레기가 있나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명색이 쓰레기를 치우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청정한 설악산 능선에 쓰레기를 버리고 와서는 안됐다.

누가 보지 않는다고 함부로 행동하는 소인이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주변에 많은 사람이 지켜보기라도 하는 양 조심스럽게 가방을 추스르고 하산을 재촉했다.

서두르면 두 어 시간 지나면 오색에 도착할 것이다. 오색에서의 일정은 내려가면서 생각하기로 했다. 바로 서울로 가 다음날 출근 장소로 갈지, 아니면 바로 서해안 항구로 가서 쓰레기 작업을 할지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결정을 미루는 스타일이 아닌데도 그렇게 한 것은 휴가 기간이 가져온 여유 때문이었다. 마음의 여유는 쓰레기를 생산하고 소비하고 버리는 자들에게 대한 이해심으로까지 확대됐다.

인간의 마음은 이런 것이다. 용서할 수 없는 것도 용서하는 것이 인간이다.

하산길은 수월했다. 마주 오는 사람이 간혹 있었지만 번잡하지 않았고 더위도 한결 무뎌져 시원한 바람이 위로 불어오기까지 했다. 절대자를 만나려는 기대를 접었는데도 발걸음은 한결 가벼웠다.

내려가도 별 볼 일 없었지만 무슨 중대한 것이 대기하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쉬지 않고 계속해서 아래로 내달렸다.

이것은 기대를 내려놓은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자만이었다. 처음에는 한 번도 쉬지 않고 내려올까 하다가 어느 순간 계곡물 소리를 접하고 한 번은 쉬어도 좋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을 하자 쉬기에 적당한 곳이 보였고 나는 나무에 배낭을 기대 놓고 등산화를 벗었다. 양말도 벗었다. 그리고 냇가에 발을 담그고 어, 시원해 어, 시원해하면서 물장구를 쳤다.

그때 나는 이미 하산한 다음 경포로 방향을 정해 놓았다. 그곳에서 점심을 먹고 서울로 올라와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경포는 오래전에 한 번 가본 곳이었다. 다른 해변처럼 어떤 뚜렷한 인상은 없었다. 바다에서 자고 나서인지 바다가 특별하지는 않았다.

하도 경포, 경포 해서 경포는 다를 줄 알았으나 모래와 바다와 파도라는 공식은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가 경포에서 점심 일정을 잡은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는 그곳 해변의 쓰레기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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