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된 검은 물체는 작은 물결도 일지 않았다

2019.09.20  (금) 10:03:41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bgusp@newsmp.com)
사라져라.

없는 것이 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없어지게 하는 것이 내 소원이었다. 이것은 누구의 의견을 경청해서 내린 결정이 아니었다.

참고자료도 없었다. 오로지 내 주관과 내 판단에 의해서 이런 결정이 내려졌다. 이것은 일시적이거나 즉흥성을 띄는 것이 아니었다. 오랜 기간 숙고해서 내린 것이었으므로 후회나 다른 것을 생각할 이유는 없었다.

사라져라.

나는 사라져야 할 것을 굳이 여기서 다시 적을 생각은 없다. 다만 사라지고 나서 그것이 사라졌을 때 어떤 이야기들이 나오는 지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싶다.

그것이 없다고 해서 인간이 생존할 수 없는 것도 아니고 삶의 질이 낙후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유의미하게 증명하고 싶었다. 물론 이것도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이겠지만.

주문처럼 나는 사라져라, 사라져라, 사라져라 라는 말을 세 번 연속 되풀이 해서 말했다.

두 번이나 한번이 아니고 세 번인 것은 내가 삼 이라는 숫자를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삼세번이라는 말은 기회를 세 번 준다는 의미도 있지만 그것이 정확한 요구인지 확인하는 절차 일 수도 있다.

마지못해 한 번이나 두 번은 그렇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 그러나 같은 말을 세 번 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자기 의지의 확신성을 담보하는 것이다.

세 번 외치고 나자 속이 후련했다. 삼년 묵은 체증이 일시에 내려가는 것에 비유할 수는 없었지만 어떤 알지 못하는 사건에 연루돼 누명을 썼다가 풀려나는 기분 같은 것이었다.

나는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때 내 시선은 무심한 것이 아니었고 무언이 지나가고 있는지 뚜렷하게 알기 위한 의식적인 행동이었다. 그러다 보니 파리가 창문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고 나비가 날아가는 것도 보았다.

움직이는 것을 보는 것은 그렇다고 쳐도 창문의 구석에 앉아 있는 파리를 발견한 것은 유심히 봤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에스프레소 잔의 검은 내용물이 출렁였다. 그 순간 나는 마치 무슨 헛 것을 보고 몸을 움츠리는 사람처럼 잠시 긴장을 했으나 이내 고개를 들어 천장으로 눈길을 옮겼다.

멈춘 잔을 흔들지도 않았는데 검은 물체 속에 흰 것이 출렁거렸기 때문이다. 절대자가 천장에 붙어 있거나 아니면 그곳을 통과했는지도 몰랐다.

아무데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것이 절대자였으므로 스파이더맨처럼 천장에 붙어 있다고 해서 이상할 것이 없었다. 잔을 들기보다는 그대로 잔 속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나는 한 번더 헛것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그러나 고정된 검은 물체는 미동도 없었고 작은 물결도 일지 않았다. 초조한 것은 나 였으므로 나는 다시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봤다.

ⓒ 의약뉴스(http://www.newsmp.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인체탐험 직접연습 소설 보기
뉴스홈으로 이동
PC버전

newsmp.com- 차별화된 뉴스

Copyright © newsmp.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