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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 삼국유사(1277 무렵)- 이토록 놀라운 우리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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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 삼국유사(1277 무렵)- 이토록 놀라운 우리 역사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5.07.07 16: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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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로마가 망한 이유가 있듯이 신라가 망한 이유도 있다.

당시 신라는 불교를 숭상하면서도 그 폐단을 알지 못했다. 여염마을까지 탑과 절을 즐비하게 세우고 백성들은 달아나 승려가 되었다.

당연히 농민과 군사는 줄어들어 나라는 나날이 쇠약해졌다. 그러나 김부대왕(경순왕, 897~978)은 이를 바로 잡을 생각도 없이 더욱 못되고 음탕했다. 비빈이나 종척, 궁인이나 신하를 모아 포석정에 나가 주색잡기에 빠졌다.

백제 견훤이 쳐들어온 줄도 모르고 즐겼다. 모든 일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적병은 후궁으로 도망가 숨은 왕과 왕비를 잡았다. 종척, 공경대부, 시녀들은 귀천을 막론하고 견훤 앞에 엎드려 노비가 될 것을 간청했다.

견훤은 왕에게는 자진을 명령했고 비빈은 욕보였다. 부하들은 빈첩들을 겁탈했다. 견훤은 경순왕의 족제인 부를 허수아비 왕으로 세웠다. 일연이 쓴 <삼국유사>의 신라 마지막 왕 김부대왕 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삼국유사>가 신라 중심의 서술이니 이후의 일을 좀 더 살펴보자.

고려 태조는 허수아비 왕을 찾아 위로했다. 술에 취한 왕은 태조에게 넋두리를 했다.

"과인이 부덕하여 환란을 불러일으키고 견훤이 불의를 자행하여 나라를 잃게 됐으니 얼마나 원통한 일인가요."

허수아비 왕은 정확히 신라가 망한 이유를 꿰뚫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신라를 다시 일으킬 만한 위인은 되지 못했다. 국력은 더욱 쇠약하고 형세는 고립됐다. 왕은 신하들과 함께 고려에게 나라를 바칠 것을 상의했다.

이때 태자(마의태자)가 나서 말했다.

나라의 존망에는 반드시 천명이 있다. 마땅히 충신과 의사와 함께 민심을 수습해 본 뒤에 할 수 없으면 그만 두어야지 어찌 천년의 사직을 경솔하게 남에게 넘길 수 있냐고 따졌다.

왕의 대답은 어땠을까.

그래, 태자 네 말이 맞다. 민습을 수습하고 신라의 기세를 이어가자, 아니면 고립되고 위태로와 보존할 수 없는 형세다, 강성해질 수 없고 더 나약해 질 수도 없는데 나로서는 차마 무고한 백성들에게 더이상 도탄의 고통을 맛보게 할 수 없다, 일까.

대답은 다 알다시피 후자다. 왕은 시랑 김봉휴 편에 편지를 보내 태조에게 항복을 요청했다. 이로써 기원전 57년 세워진 신라는 935년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채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이후 신라왕은 낙랑공주를 아내로 맞아 죽을 때까지 편하게 잘 지냈다.)

▲ 일연의 삼국유사는 설화 등 흥미진진한 내용이 많다.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읽어야 하는 필독서다.
▲ 일연의 삼국유사는 설화 등 흥미진진한 내용이 많다.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읽어야 하는 필독서다.

앞서 <삼국유사>가 신라 중심의 서술방법을 택했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전체 역사를 빠트리지 않고 있다. 고구려, 백제 그 이전의 고조선까지 망라하고 있다. 여기에는 기이하고 괴이한 일이 많이 일어났다.

책의 맨 앞머리에는 고조선(왕검조선)을 다루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 단군왕검이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조선이라고 불렀다. 단군왕검은 삼칠일(21일)동안 호랑이와 달리 마늘과 쑥만 먹고 견뎌 여자로 변한 곰이 환웅과 결혼해 낳은 아들이다.

단군왕검은 무려 1500년 동안 백악산에서 나라를 다스렸고 이후 아사달로 돌아와 신선이 되어 숨어 지냈는데 그 때 나이 1908세였다.

발해, 변한과 백제, 활을 백번 쏘면 백번 맞추는 고구려 고주몽이야기가 흥미롭다. 이후는 신라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알에서 태어난 신라시조 혁거세, 연오랑가 세오녀, 내물왕과 박제상 등등.

그냥 넘어가기 아까운 신라 제 22대 지철로 왕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왕의 음경은 무려 한자 다섯치로 그와 대적할 여자가 없었다. 삼도를 찾아 헤맨 끝에 개 두 마리가 양쪽에서 먹을 만큼 북만큼 큰 똥을 누는 모량부 상공의 딸과 결혼한 이야기. (참고로 이여인의 키는 일곱자 다섯치였다고 한다.)

선덕왕, 진덕왕, 김유신, 당나라 소정방을 끌어들여 백제를 멸망으로 이끈 태종 춘추공.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이 괴이쩍어 믿을 수 없다고 말한 신문왕 때 만파식적(거센 물결을 잠재우는 피리), 성덕왕 등.

절세미인 수로 부인 이야기, 경덕왕 때 충담사의 찬기파랑가, 원성대왕.

그런가 하면 책 전체를 통해 유일하게 날씨를 적은 '때이른 눈'은 흥미롭다. 내용은 이렇다. 제 40대 애장왕 말년인 무자년(808) 8월 15일에 큰 눈이 내렸다. ( 이날에 큰 눈이 내렸다면 일연이 보기에 적을 가치가 있었을 것이다.)

제 48대 경문대왕 편에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가 나오고 49대 헌강대왕 때에는 밤새 놀다 집에 와 보니 다리가 넷인데 둘은 내것인데 둘은 누구것이냐는 처용랑과 망해사의 가사가 눈물겹다.

그리고 서두에 언급한 신라 마지막 왕 김부대왕을 지나면 백제 무왕편이 나온다. 그 유명한 신라 진평왕의 셋째딸 선화와 얽힌 어릴 때 마를 캐다 팔던 서동의 사랑이야기가 눈길을 잡아 끈다.

선화 공주님은 남몰래 짝지어 두고 서동 서방을 밤새 몰래 몰고 간다네.

후백제와 견훤, 가락국기, 중국과 가까워 고구려가 처음 접한 순도의 불교 이야기, 마라난타의 백제 불교, 아도의 신라 불교, 원종, 법왕, 보장왕, 요동성의 육왕탑, 고구려의 영탑사, 황룡사의 구층탑, 생의사의 돌미륵, 남백월의 두 성인,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분황사의 천수대비, 오대산이 5만 진신, 신라 최초 중국 유학생 원광, 계율을 정한 자장, 원효, 화엄종의 의상, 진표, 밀본법사, 용을 항복시킨 혜통, 명랑 등.  삶과 죽음의 길을 말한 월명사의 도솔가, 살아 돌아온 선율, 호랑이를 감동시킨 김현, 융천사의 혜성가, 벼슬을 그만 둔 신충 등등.

이렇게 죽 이어진 <삼국유사>는 불국사 탄생 설화가 된 대성이 두 세상의 부모에게 효도하다, 경덕왕 때 상득사지가 허벅지 살을 베어 부모를 봉양하다, 중국과 연대기를 비교한 왕력을 거쳐 발문으로 끝난다.

팁: 발문은 <삼국유사>의 전승과정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여기에는 유래, 보존상태, 간행동기 등이 자세히 서술돼 있다.

간추린 내용은 이렇다.

“내가 생각건대 선비가 이 세상에 태어나 여러 사서를 두로 보아 천하 정치의 잘잘못과 흥함과 망함 그리고 여러 이적까지도 널리 알고자 하는데 하물며 이 나라에 살면서 역사를 알지 못해서야 되겠는가? 그래서 다시 간행하고자 널리 완본을 구했으나 몇 년이 지나도록 얻지 못했으니 이 책이 세상에 널리 퍼지지 않아 사람들이 쉽게 구해볼 수 없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므로 지금 다시 간행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실전되어 동방의 지난일을 후학들이 들어서 알 수 없게 될까 한탄스럽다.”

<삼국사기>를 정사라고 하면 <삼국유사>는 야사라고 한다. 야사 이니 만큼 깜짝 놀랄 내용들이 많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의 역사가 이토록 커다란지 새삼 기쁘기 그지 없다. 일독을 권하는 이유다. (우리가 호랑이, 곰이나 알을 이야기 할 때 피라미드나 스핑크스, 콜로세움이나 파르테론 신전 등 숱한 건축 기술이 있었다. 우리 역사에서 ㅇ이 두어개 빠진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든다.)

한편 지은이 일연은 1206년 경북 경산에서 태어나 열 네 살에 승려가 되기 위해 강원도 양양의 진전사로 들어가 수행과 불법을 펼치는데 정성을 다했다. 효성도 극심해 일흔 아홉 살 말년에는 왕의 명령도 거부하고 홀어머니를 모시면서 위대한 민족 유산인 국보 <삼국유사>를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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