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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6. 디빈: 여신들(2016)- 신은 어디에, 오픈카의 꿈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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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6. 디빈: 여신들(2016)- 신은 어디에, 오픈카의 꿈은 어디에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6.10.22 1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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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늘 돈을 생각하라, 그래야 돈이 따른다.’ 유럽식 격언인가. 돈을 벌고 싶으면 돈을 좇지 말라는 우리식과는 좀 다르다. 아니 우리도 이젠 변했는지 모른다. 돈을 벌려면 한시도 돈 생각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

어쨌든 돈이 문제다. 과거나 현재나 그 놈의 돈타령. 하지만 가난한 자에게는 그만큼 절박하다. 하루 하루가 피를 말리는 상황이다. 이를 이겨내는 것은 어렵다. 유럽이나 한국이나 지구 어떤 나라나 가난한 자의 하루는 눈물겹다.

선진국 프랑스의 상황은 어떤가. 예외인가. 예외가 아니라 어쩌면 그런 경우의 수 맨 앞에 있는지도 모른다. 두니아(울나야 아마라)의 처지가 그렇다. 10대 학생으로 감수성이 무척 예민할 때다.

연애나 하고 대학진학이나 미래를 고민하기보다는 먹고 사는 문제에 닥쳐 있다. 아버지는 없고 엄마는 푼수데기다. 두니아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그런 두니아에게 친구 마이무나( 데보라 루쿠후에나)가 위안을 준다.

단짝이라고나 할까. 없어서는 못살고 죽는. 이건 우정인가 사랑인가. 어쨌든 두니아는 그런 너저분한 일상을 탈출하고 싶다. 학교 선생의 훈계질도 생존 앞에서는 먹혀들지 않는다.

그의 머릿속은 학업이 아니라 온통 휴양지에 쏠려 있다. 푸켓이나 튀르키에 같은 곳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명품을 쇼핑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한다.

돈을 생각하고 돈이 한시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더 노력해야 한다. 돈이 없는 것은 부자들이 돈을 다 가져가서가 아니라 노력이 부족해서다. 

어느 날 두니아는 돈을 목격한다. 푼돈이 아니다. 매장의 물건을 훔쳐 되팔아 버는 그런 푼돈이 아니다. 단 한번의 거래로 뭉텅이로 손에 잡히는 그런 목돈.

마약이다. 마약상에게 접근하는 두니아. 관객은 이때부터 소녀의 미래가 어떨지 짐작한다. 긴장과 두려움에 떠는 두니아. 하지만 돈 앞에서 그런 것들은 뒤로 자꾸만 밀려 나간다.

마침내 두니아는 마약상과 거래를 튼다. 무모한 그의 용기와 저돌적인 대시. 배신하지 않을 것 같은 의리 비스무레한 것을 레베카가 본 것이다. 자, 이제 두니아의 삶은 어떻게 될까. 그리고 마이무나는.

영화는 빠르게 진행된다. 음침하고 폭력적이고 선정적이다. 느와르 영화의 기본기는 갖춰진 셈이다. 여기에 남자가 빠질 수 없다. 춤꾼이 등장한다. 춤추는 남자와 두니아의 관계가 흥미롭다.

▲ 둘은 우정을 넘어 사랑하는 사이다. 영화는 비극이어서 둘 중의 하나는 죽는다. 가난한자의 꿈과 현실을 사실감 있게 그렸다.
▲ 둘은 우정을 넘어 사랑하는 사이다. 영화는 비극이어서 둘 중의 하나는 죽는다. 가난한자의 꿈과 현실을 사실감 있게 그렸다.

남자는 연습에 열중이다. 오디션에 합격해야 한다. 몰래 훔쳐 보는 두니아. 사랑에 빠지는 감정이 일 때쯤 그녀는 엄마와 춤꾼이 함께 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헤픈 엄마를 탓해야 옳다.

하지만 그의 분노는 엄마보다는 춤꾼에게 쏠린다. 이건 어느 날 일어난 하루의 일과에 불과하다. 마약 중간상으로 커가는 두니아. 레베카는 그에게 임무를 준다.

영화는 막판으로 치닫고 있으니 그 임무의 결과과 나올 때 쯤이면 막이 내릴 것이다. 아파트에 숨겨놓은 약쟁이의 10만 유로를 훔쳐오는 것. 돈을 갖고 튀어나오면 두니아는 그녀가 꿈꾸던 것을 이룰 수 있다.

푸켓의 휴양지와 오픈카와 신나는 클럽에서의 일상. 과연 그런 꿈은 이뤄질까. 성을 매개로 한다지만 쉽지 않다는 건 누구나 알 것이다. 하지만 그 어려운 일을 두이나는 '마침내 기어코 드디어' 해내는데 성공한다.

적진 깊숙이 침투해 적의 심장을 꺼내 온 것이다. 그 과정이 험난했을 것임은 누구나 예측해 볼 수 있는 범위안에 있지만. 어쨌든 돈을 갖고 튀었다. 그 전에 두니아는 욕조 속에서 현금 뭉치를 비눗방울처럼 온 몸에 감싸고 황홀해 한다.

어디서 많이 본 기시감이 들지만 영화에서는 전혀 이질감이 없다. 누구라도 그 상황이라면 그런 기분이 들지 않을까. 자, 돈은 있다. 그 돈은 명령권자인 레베카에게 온전히 돌아갈까.

아니면 친구 마이무나와 엄마한테 남겨질까. 최종 오디션에 합격한 춤꾼과의 도피는 가능할까. 두니아의 짧은 행복은 여기서 끝날까, 조금 더 이어질까.

결론을 말하고 싶다. 친절한 영화평은 그래야 하니까. 파국이다.

두니아의 연기가 아름답다. 지옥 속에서도 아름다움은 존재한다. 그것을 두니아가 잘 표현냈다. 영화는 뻔한 스토리지만 다른 영화와는 다른 존재감을 드러냈다. 두니아의 연기와 우다 베니야미나 감독의 합작품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감독: 우다 베니야미나

출연: 울라야 아마라, 데보라 루쿠무에나

평점:

팁: 보이지 않는 미래만큼 불안한 것은 없다. 그 불안은 전적으로 개인의 책임일까. 제도권안에서 해결할 수는 없을까. 어려운 문제다. 빈부의 격차는 세계적 현상이다.

영화가 나온 신형 아이폰 6을 부러워 하던 오래 전 프랑스. 지금 프랑스를 보는 모습과 자연스럽게 겹친다. 영화의 막판에 시위대와 경찰이 맞서는 장면이 나온다.

불타는 집안에 갇힌 살릴 수 있는 마이무나를 방관하는 소방관. 그들에게 분노의 돌팔매질을 하는 군중들. 달라진 것은 없고 더 악화된 것만 같은 현실이 씁쓸하다.

그런 선생님은 지금 잘 살고 계신가요? 라는 질문 앞에 선생님의 굳은 표정. 부자의 꿈은 그런 훈계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두니아처럼 행동해야 하나. 상황극이라고는 하지만 그런 것도 아니다.

영화는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씁씁하지만 어쩌겠는가 하고 한탄할 수 만도 없다. 해답이 없어도. 마땅한 대책이 없어도. 신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인간이 어떻게 풀 수 있겠나, 하고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가난 앞에 서면 누구나 두니아가 될 수 있다. 그런 두니아를 탓할 수 있을까. 누가 손가락질하면서 욕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그렇게 하지 말라거나 해야 한다고 영화는 말하지 않는다.

여신이 아니고 '여신들'이라고 했으니( 허진호 감독의 암살자(들)이 연상된다.) 여신은 하나가 아닌 둘 이상의 복수가 되겠다. 누가 여신들인가? 풀어보는 숙제도 괜찮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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