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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 학마을 사람들(1957)-서정성과 반동의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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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 학마을 사람들(1957)-서정성과 반동의 이미지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6.05.27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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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달리는 차로 새똥이 떨어졌다. 유리창에 하얀 똥 줄기가 흘러내린다. 이런 젠장. 순간 기분이 엉망이다. 하지만 곧 이게 웬 횡재인가. 달리는 차에 떨어질 새똥의 확률은.

이런 생각을 하면 지저분한 차보다는 로또를 생각하게 된다. 한 장 사자, 아니 두 장. 봉네도 순간 그런 생각일 터. 아니 그 오래전부터 하나의 루틴으로 굳어져 왔다.

물동이를 이고 가는데 그 위로 새똥이 떨어진다. 그 물을 마실 생각을 하면 속상하다. 버리고 다시 떠야 하나. 하지만 새똥도 그냥 새똥이 아니다. 학의 똥이다.

그렇다면, 얘기인즉슨 달라진다. 곧 난 시집간다, 생각하면 얼굴에 홍조가 자르르 번진다. 그런 일이 실제로 계속 일어났다. 매주 로또 맞는 사람이 생겨나는 것처럼.

과연 봉네는 그 일이 있고 나서 미리 학의 똥의 맞은 탄실이처럼 시집을 갔다. 이장 아들 덕이가 신랑이 되겠다. 하지만 덕이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더 봉네를 사랑했던 남자가 있었다. 이름하여 바우.

바우의 심정은 어떨까. 사랑하는 여자를 다른 남자에게 뺏긴 기분이. 더구나 친구로 한마을에 살고 있으니. 바우는 떠나야 한다. 객지로 도망쳐 잡친 기분을 되살려야 한다. 과연 바우는 떠났다.

▲ 학을 둘러싼 희망과 비극을 서정성과 반동 이미지를 중첩하면서 이범선은 '오발탄'과 함께 '학마을 사람들'을 자신의 대표작으로 남겼다.
▲ 학을 둘러싼 희망과 비극을 서정성과 반동 이미지를 중첩하면서 이범선은 '오발탄'과 함께 '학마을 사람들'을 자신의 대표작으로 남겼다.

서울로 가서 공장일을 배웠다. 그리고 고향 학마을로 돌아왔다. 바우는 이전의 바우가 아니었다. 그는 아는 것이 많고 세상 보는 눈이 달라졌다. 그래서 말은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고 했던가.

어쨌든 바우가 돌아왔다. 그의 입에서는 반동이라는 말이 자주 튀어나왔다. 착취나 해방, 쏘련이나 탱크 같은 말들도 달고 살았다. 왜놈이 쫓겨나자 전쟁이 터진 것이다. 그는 황색 인민복을 입고 이장 대신 위원장이 됐다.

오발탄의 작가 이범선의 ‘학마을 사람들’은 왜정시대와 한국전쟁으로 학마을과 학마을 사람들이 파괴되는 비극의 현장을 그렸다. 책은 해마다 오던 학마을에 학이 안 온지 삼 십 년이 넘었다는 박훈장과 이장영감의 대화로 시작된다.

언제부터 학이 왔는지는 모르나 봄에 씨를 뿌리기 바로 전에 한 쌍의 학은 늘 학마을에 찾아왔다. 그 학이 새끼를 셋 나으면 풍년이고 둘 나면 평작 하나면 흉년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학을 영험한 존재로 알고 학이 돌아온 날이면 학나무 아래서 잔치를 벌였다.

반면 학이 오지 않으면 씨를 뿌려도 흉년이 들었다. 곡식은 타들어 갔고 이제나저제나 마을 사람들은 학이 돌아올 때만을 기다리면서 빈둥지만을 올려다볼 뿐이었다. 학이 있다면 비오 비오 울면서 비를 불러올텐데.

학이 오지 않는 이유는 나중에 밝혀졌다. 왜놈들이 나라를 빼앗았기 때문이다. 무려 36년간 나타나지 않았다. 학이 오지 않아도 봄은 왔다. 흉년은 계속됐고 이십 가구의 집들은 살기 위해 떠나고 이제 남은 것은 겨우 일곱 가구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학이 돌아왔다. 마을은 꽹과리를 치고 잔치를 열었다. 쓱 치켜든 긴 주둥이, 이마의 빨간 점, 늘씬히 내뺀 목, 눈처럼 흰 깃, 꼬리께 까만 깃이 영락없는 학이었다.

그 무렵 왜병에 끌려갔던 박훈장 손자 바우와 이장네 손자 덕이가 커다란 왜병의 옷을 입고 마을로 돌아왔다.

“우리가 독립했어요.”

가을이 되어 학마을은 낫가리가 높이 솟았고 집집마다 풍년가를 불렀다. 학은 그다음 해도 또 그다음 해도 날아왔다. 그리고 알을 까고 새끼를 키워 날아갔다. 그리고 앞서 말한 대로 덕이가 봉네와 결혼했다.

그날 밤 늙은 할애비 박훈장도 모르게 바우는 마을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어느 해 학의 새끼 한 마리가 떨어져 죽었다. 흉한 일이었다. 마을은 드르릉드르릉 흔들렸다. 누렁 옷을 입은 사람들이 어깨에 총을 메고 북쪽 영을 넘어 들어왔다.

바우도 돌아왔다. 동무와 반동 해방과 숙청을 입에 달고서. 그리고 학을 처치해야 한다고 소리쳤다. 누구도 바우의 행동을 막을 수 없었다. 바우의 총에 맞은 학은 떨어져 죽었다. 학이 죽은 학마을은 더이상 학마을일 수 없었다.

비극이다. 학이 죽어서도 그렇지만 박훈장과 이장도 죽었다. 누구 짓일까. 북으로 달아난 바우 소행일까.

팁: 학이 울 때는 어떤 소리로 울까. 앞서 가뭄에 비를 내려 달라고 울 때의 표현은 했다. 비오 비오.

새끼일 때는 짝짝 울고 어른이 돼서 엄마와 함께 날 때는 삐르 삐르 운다. 짝을 잃은 나머지 학은 끼역끼역 운다. 미쳐서 내는 소리다. 피를 토하는 소리다.

강원도 두메산골. 오르는데 십 리 내리는데 십 리 그리고 거기서 삼 십리를 더 가야 하는 학마을. 그 학마을을 배경으로 젊은 청춘 남녀 억쇠와 탄실이, 바우와 덕이와 봉네 그리고 늙은 박훈장과 이장 영감.

이들이 내는 울음과 희망이 학을 통해 메아리처럼 산골짜기로 울려 퍼진다. 나라를 뺏긴 조선의 비극과 해방 후 민족전쟁이라는 또 다른 비극은 학의 죽음과 맞물리면서 이범선 문학의 절정을 보여준다.

순진한 농촌 마을의 서정성과 그에 대한 반동의 이미지는 선명한 이미지로 남아 지금도 여전히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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