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뉴스]
위에 있다가 아래로 내려온 것에는 측은지심이 있다.
우러러 봐야 보였던 것이 고개를 숙이고도 볼 수 있다.
때로는 발로 밟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땅에 떨어진 것은 자연속으로 사라진다는 점이다.
생명이었다가 소멸로 접어들었다는 것은
존재의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낙화도 예외는 아니다.
나무위에서 요염하게 때로는 우아하고 당당하게
나 여기 살아 있는 존재요, 했던 것이
이제는 안녕, 하고 작별을 고한 것이다.
어떤 이는 작별은 또다른 만남이라고 한다.
녀석도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내년에도 내 후년에도 녀석은 우러러볼 존재가 될 것이다.
그리고 다시 밟히는 신세.
그것이 자연의 이치요,
우주의 존재 이유라고 하면 아쉬울 것도 서러울 것도 없다.
해서 모감주나무의 낙화에도 덤덤해 지려고 한다.
하지만 이 순간간 만큼은 소멸에 대한 안쓰러움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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