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뉴스]
영화는 주인공의 예술이다. 조연의 등장은 약방의 감초. 이창동 감독의 '버닝'은 조연이 눈에 띈다. 카메오라고나 할까. 벤 역의 스티븐 연을 우선 꼽을 수 있다.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성난 사람들’의 그 배우 맞다. 일찍이 이 감독이 떡잎을 알아봤다. 조연이라기보다는 주연급 조연이라고 봐야 한다.
용석 역의 최승호 피디는 아무 말이 없다. 화난 표정 그대로다. 법정에선 고집불통의 이미지가 볼만하다. 변호사 역의 문성근도 조연으로 잘 어울린다. 깡패 변호사처럼 건들거리는 폼이 일품이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 소설 지망생인 종수(유아인)는 역이 끝날 때까지 지망생 신분이다. 언제 소설이 완성될지 아무도 모른다. 소설 쓰는 모습도 안 보인다.
노트북 앞에 앉은 장면이 한 번 나오기는 하는데 공무원을 때려서 재판을 받는 아버지의 탄원서 작성이 고작이다. 앞서 말한 최승호 피디가 아버지.
종수는 파주 외곽에서 주로 산다. 간혹 아르바이트로 짐꾼 일을 하는데 우연히 시골학교 동창 해미( 전종서)를 만나 뜨거운 하룻밤을 보낸다. 해미는 나레이터 모델로 불안한 영혼의 소유자로 보인다.
해미는 후암동에 산다. 집이 북향이라 하루 한 번 짧은 해를 보는데 남산타워가 반사한 빛이다. 그 빛이 하필 둘이 관계를 할 때 비친다. 감독은 어둠과 빛을 이런 식으로 표현했다.
고양이를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해미는 아프리카로 떠난다. 종수는 매일 고양이 밥을 주러 해미의 방으로 가는데 정작 고양이는 보이지 않는다. 밥은 비어 있고 똥까지 치우지만 고양이의 실체는 없다.
며칠 후 해미에게서 전화가 온다. 나이로비 공항인데 마중 나올 수 있느냐고. 반가운 종서. 해미 없는 밤낮을 자위로 달래던 그의 얼굴에 살짝 웃음꽃이 핀다. 단비와 같은 존재 해미.
들뜬 마음으로 트럭을 몰고 공항으로 간다. 하지만 거기에는 어떤 낯선 남자가 종수를 맞는다. 해미는 오빠라고 했다. 둘은 가까운 사이로 보인다. 문제가 생겨 공항에서 며칠 묵었는데 유일한 한국인인 벤에게 끌렸던 것.
벤은 포르쉐를 몰고 다닌다. 종수의 트럭과 비교가 아니 될 수 없다. 게다가 배운 게 많고 쓰는 말투도 다르다. 해미는 종수가 아닌 벤을 따라가고 허탈한 종수는 벤의 정체가 궁금하다.
몇 차례 벤을 만난 종수는 그가 대마초를 피우고 재미로 불을 내는 정신이 이상한 자라는 걸 안다. 두 달에 한 번꼴로 태워야 딱 좋다는 말을 듣고 어이없어 하지만 사실인지 궁금해한다.
종수는 틈나면 대로 주변을 돈다. 태울만한 비닐하우스가 있는지, 이미 태웠다는 말을 듣고는 사실 확인에 나서는데. 현장 감식반처럼 이리저리 돌지만 흔적을 찾지 못한다.
시간은 흘러 이제 종수는 벤의 친구들 모임에도 참석한다. 모임에서 해미는 자신의 여행 경험담 등을 늘어놓고 참석자들은 모두 관심있다는 표정이다.
정말 배고픈 리틀 헝거와 배고픈 단계를 뛰어넘은 영적의 단계에 이르는 그레이트 헝거 이야기가 나올 때 분위기는 절정에 이른다. 해미는 아프리카에서 배웠던 춤을 종수의 파주 집 앞마당에서 춘다. 벗거벗은 몸으로.
해는 노을을 남기고 사라지고 해미는 그레이트 헝거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데. 그런 해미에게 종수는 우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주는 구원자가 될까. 아니면 창녀나 하는 짓이라고 모욕할까.
또 두 달이 지났다.
벤이 비닐하우스를 태울 시기가 온 것이다. 살인자가 살인의 쾌감을 느끼는 시기가 있듯이 방화범도 시간이 있는 법. 두 달이 다 되어 간다. 종수는 긴장하지만 벤은 태연하다. 재미로 해미를 만나는 벤에게 방화 역시 재미 일뿐이다.
그런 벤에 종수는 분노를 느낀다. 계급 갈등과 연적에 대한 증오를 더해. 그를 죽여야겠다는 결심이 언제 생겼는지는 모르지만 종수는 벤을 죽이고 그의 차를 불태운다.
초겨울 벌거벗은 종수가 트럭을 몰고 어디론가 사라지고 영화는 막을 내린다. 영화 시작과 함께 흔들리며 등장한 종수는 영화가 끝날 때 흔들리며 사라진다.
감독: 이창동
출연: 유아인, 전종서, 벤
평점:

팁: 미스터리 호러물로 규정할 수 있겠다. 풀리지 않은 숙제는 제법 있다. 먼저 종수의 소설이다. 소설의 주제와 대상이 누구인지 끝내 드러나지 않는다. 우물에 관한 것도 미스터리다.
해미는 종수가 일곱 살 때 우물에서 자신을 꺼내 줬다고 하지만 마을 이장이나 해미 엄마나 언니는 우물이 없다고 단정한다. 다만 수십 년 만에 나타난 빚쟁이 엄마는 우물이 있었다고 종수에게 말한다.
우물은 끝내 화면에서 나타나지 않는다. 흔적이 없던 고양이는 벤의 집에서 나타나는데 돌연 열린 문으로 도망친다. 그 고양이를 종수가 찾는데 고양이나 야옹이로 불렀을 때는 오지 않고 원래 이름인 보일로 부를 때 다가온다.
해미의 고양이가 분명하다. 그리고 벤의 화장실에서 본 해미가 종수에게 준 분홍색 시계. 종수는 생각한다. 해미가 사라진 것은 벤과 연관이 있다고. 사라진 것이 아니라 살해당했을 수도 있다는.
영화는 종수가 벤을 살해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진짜 살해했는지 아니면 소설 속에서 살해당한 것인지 불분명하다. 한편 영화속의 모든 이야기는 종수가 쓴 소설이 아닐까. 종수의 소설을 감독이 영화로 만들고.
‘가능한 사랑’이 개봉되기 전에 이 영화를 먼저 보면 왜 ‘가능한 사랑’인지 더 잘 보일 것만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