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뉴스] 간 지질대사와 페롭토시스(Ferroptosis), 생체 내 촉매반응 등 서로 다른 약학 연구 분야에서 관련 기전과 기술을 질환 치료에 활용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의약뉴스는 지난 22일 대한약학회 국제학술대회 현장에서 이러한 연구를 수행해 온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이병훈 교수, 독일 헬름홀츠 뮌헨의 Marcus Conrad 박사, 일본 도쿄대학교 약학대학원의 Motomu Kanai 교수를 만나 각자의 주요 성과와 치료제 개발 현황, 향후 계획을 들었다.
◇간독성 연구에서 MASH 치료제 개발로, 다중표적 전략 모색
이병훈 교수는 의약품과 화학물질이 간세포의 지질대사를 교란해 간 손상을 일으키는 기전을 지난 20~30년간 연구해 왔다. 간의 지방 축적이 염증과 간섬유화, 간암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관련 연구의 중요성도 높아졌다.
이 교수는 이번 기조강연에서 에탄올과 테트라사이클린, 베르베린 등이 간 지질대사에 미치는 영향과 비스테로이드성 항염증제(NSAIDs)의 자가포식 억제 기전, 샤페론 매개 자가포식(CMA) 활성화를 통한 대사이상 관련 지방간염(MASH) 치료 가능성을 소개했다.
그는 "처음에 이 연구를 시작할 당시에는 지질대사와 관련된 간독성을 독성이라고 잘 인식하지 않았던 시대가 있었다"며 "논문을 내거나 학술적으로 소통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지만,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많은 제약회사가 중요성을 인식하고 연구하는 분야가 됐다"고 밝혔다.
이러한 연구는 MASH 치료제 개발로도 이어졌다.
이 교수는 "처음에는 기초적인 개념으로 시작했다가 이것이 질환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고 단순히 독성학적인 연구뿐만 아니라 질환 치료제 개발이라는 두 개의 목표를 가지고 연구해 왔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실제 신약 개발 과정에서 여러 차례 어려움을 겪었으며, 최종적인 산업화 성과는 아직 얻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 대부분의 연구자가 엄청난 노력을 하지만 실제로 성공적으로 결말을 맺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라며 "디스커버리 단계에서 많은 노력을 했고 특허도 내고 기업에 기술이전도 했다"는 것.
이어 "기술이전된 것이 임상으로 들어가서 임상에 성공되는 사례도 경험했지만 그다음 단계에서 결국 실패하는 경험도 했다”며 “이는 나뿐만 아니라 많은 연구자가 겪는 일”이라고 전했다.
특히 이 교수는 MASH 치료제의 후기 임상 실패와 관련해 단일 표적 접근법의 한계를 짚었다.
그는 "하나의 표적만 잡아서는 될 수 없고 각각의 중요한 표적을 동시에 타깃팅하는 시도를 해야 한다"며 "지금까지 특정 표적을 중심으로 약물을 개발하다 보니 임상 마지막 단계에서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강조했다.
이어 "MASH도 결국 지질대사와 염증, 섬유화 단계에 동시에 작용할 수 있는 모달리티를 찾는 것이 해법이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 교수는 내년 2월 정년퇴임 이후 지금까지 수행해 온 신약 후보물질 발굴 단계의 연구를 원하는 후배 교수들에게 인계할 계획이다. 연구를 넘긴 이후에도 후속 성과를 얻을 수 있도록 계속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페롭토시스 치료제 개발 진전, 바이오마커 확보 과제
Marcus Conrad 박사는 세포막 지질의 과도한 산화로 발생하는 철 의존성 세포사멸인 페롭토시스를 조절해 퇴행성 질환과 암을 치료하는 연구를 소개했다.
이번 기조강연에서는 지질과산화를 억제하는 GPX4와 FSP1 단백질의 기능을 비롯해 FSP1 저해제인 icFSP1을 활용한 항암 연구, GPX4 돌연변이와 조기 발병 치매의 연관 가능성 등을 다뤘다.
Conrad 박사는 "페롭토시스라는 명칭은 2012년에 만들어졌지만 우리는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이 세포사멸을 연구해 왔다"며 "초기에는 이러한 세포사멸을 막을 수 있는 억제제를 찾는 연구를 수행했다"고 밝혔다.
페롭토시스는 질환에 따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조절할 수 있다. 심근경색과 신경퇴행성 질환에서는 세포사멸을 억제하는 반면, 암에서는 종양세포의 페롭토시스를 유도하는 전략이다.
그는 "페롭토시스를 억제하면 심근경색과 같은 급성 질환에서 조직 손상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며 "앞으로 근위축성측삭경화증(ALS)이나 치매와 같이 심각하거나 빠르게 진행하는 질환에도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데페리프론(Deferiprone) 등 기존 철 킬레이트제는 동물 모델에서 페롭토시스 억제 효과를 보이지 않았고, 미토콘드리아의 에너지 생산에 필요한 철까지 제거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다.
Conrad 박사는 "철 킬레이션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것.
반대로 암에서는 페롭토시스로부터 세포를 보호하는 기전을 차단해 종양세포의 사멸을 유도하는 접근법을 연구하고 있으며, 간이식에 활용하기 위한 약물 개발도 추진하고 있다.
그는 "최근 발표된 연구에서는 폐선암이 페롭토시스를 억제하는 특정 기전의 차단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이를 통해 새로운 치료 방법을 찾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간이식을 위한 약물도 개발하고 있는데 전임상 개발이 거의 마무리되는 단계"라며 "하지만 대학 연구 환경에서는 자금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멀다"고 강조했다.
또 "임상 개발을 위해서는 결국 산업계가 필요하고, 제약산업에는 대학 연구기관이 가지고 있지 않은 자금과 임상 개발 역량이 있다"며 "EMA나 FDA 승인을 목표로 하려면 GMP와 GLP 조건에 맞춰 실험해야 하는데 상당한 비용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개발 비용과 별개로 페롭토시스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바이오마커가 부족하다는 점도 해결 과제로 꼽았다.
Conrad 박사는 "바이오마커는 이 분야에서 매우 큰 문제"라며 "아포토시스에는 활성화된 카스파제-3와 같은 지표가 있고 네크롭토시스에는 인산화 MLKL이 있지만, 페롭토시스에는 이처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바이오마커가 없다"고 밝혔다.
현재 연구진은 일반적인 세포사멸 지표와 지질과산화 산물에 대한 항체 염색, 질량분석법 등을 함께 사용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방식은 여러 분석을 병행해야 하므로 약물 개발에 활용할 수 있는 간편한 바이오마커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최근 발표된 논문에서는 트랜스페린 수용체의 특정 형태를 페롭토시스 바이오마커로 활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하지만 이것이 연구의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고, 이 분야 연구자들이 계속해서 답을 찾고 있다"고 전했다.
◇아밀로이드 분해 촉매 연구, 인체 적용 위한 광전달 기술 개발
Motomu Kanai 교수는 기존 분자 합성 중심의 촉매 연구를 생체 내 질환 치료로 확장하는 촉매의학(Catalysis Medicine)을 소개했다.
학술대회 수상강연에서는 히스톤 라이신 잔기의 선택적 아실화를 통한 후성유전학적 조절과 알츠하이머병ㆍ트랜스티레틴(TTR) 아밀로이드증 등에 적용할 수 있는 선택적 광산소화 기술을 발표했다.
Kanai 교수는 "촉매의 개념을 분자 합성에서 생물학적 정보의 합성으로 확장하는 데 큰 관심이 있다"며 "특정 유전자의 전사를 촉진하는 히스톤 변형과 알츠하이머병 등의 치료를 위한 비정상 단백질 분해 시스템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알츠하이머병 관련 연구에서는 아밀로이드 분해 촉매의 동물실험 성과와 인체 적용 과정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의 촉매는 마우스와 같은 작은 동물 모델에서 잘 작동하고, 마우스의 뇌에서 아밀로이드를 선택적으로 분해한다"며 "하지만 문제는 촉매가 화학반응을 일으키려면 에너지가 필요하고, 우리가 개발하는 촉매는 빛에서 에너지를 얻는다는 점"이라는 것.
마우스 모델에서는 촉매에 필요한 빛을 전달할 수 있지만, 사람의 뇌는 크기가 커 내부까지 충분한 광에너지를 공급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Kanai 교수는 "뇌 외부에서 내부로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전달되는지 계산하는 시뮬레이션 방정식을 마련했고, 현재 관련 기업이 이를 바탕으로 광조사 장치를 개발하고 있다"며 "우리의 촉매는 약 800nm 파장의 근적외선을 흡수할 수 있는데, 이는 뇌 조직으로 빛을 전달하는 데 유리하다"고 강조했다.
항체 기반 브레인셔틀(Brain shuttle) 전략과의 비교에서는 저분자 촉매의 장점을 내세웠다.
그는 "브레인셔틀은 일반적으로 항체를 활용하는데 항체는 뇌 안으로 들어가기가 어렵다"며 "우리의 분자는 뇌 안으로 직접 들어가 아밀로이드의 구조를 변화시키고, 변화한 구조는 생체 시스템에 의해 더 쉽게 분해된다"고 밝혔다.
"항체와 저분자 촉매의 분자 크기 차이는 우리에게 중요한 장점"이라는 것.
"촉매 기술의 개발과 관련해 직접 스타트업을 설립한 사실"도 밝히면서 "다만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개발의 높은 위험성으로 인해 회사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알츠하이머병은 작은 스타트업이 도전하기에는 위험성이 너무 높은 분야"라며 "여러 기업과 협력하고 있으며, 캠퍼스를 중심으로 서로 다른 분야의 연구자 약 30명이 참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러한 기술들을 결합해 뇌 내부에 필요한 에너지를 전달하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한편 Kanai 교수는 아밀로이드 촉매 분야와 관련해 한국의 선행 성과도 높이 평가했다.
그는 "아밀로이드를 가수분해하는 최초의 촉매가 서울대학교에서 개발됐다"며 "매우 우수한 연구 방향이었지만 해당 교수는 이미 은퇴했고 생체 내 반응 연구까지 진행하지는 못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럼에도 한국은 높은 독창성을 가지고 있는 만큼 대한약학회가 앞으로도 질환 치료를 위한 독창적이고 생산적인 연구를 이어갈 것으로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