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뉴스] 지난 2018년 고(故) 임세원 교수 피살 사건 이후 의료진의 안전을 위해 이른바 ‘임세원법’을 시행한 지 수년이 지났지만, 진료실 내 의료진 피습 사건이 또다시 발생하자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현행 법과 제도가 가해자 사후 처벌과 형식적인 시설 규제에 치중해 돌발적인 위험 상황을 사전에 예방하고 현장을 방어하는 데 한계를 드러냈다는 것이 의료계의 지적이다.
대한의사협회 김성근 대변인은 5일 오후 정례브리핑에서 하루 전(4일) 신촌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진료실에서 발생한 의사 피습 사건과 관련해 “의료진과 환자를 보호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국가 차원의 종합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 이유로 “법안 제정 이후 수년이 흘렀으나 여전히 사후 처벌 강화 중심에 머물러 있어 사건 발생 자체를 막는 사전 예방 체계는 미흡하다”며 “100병상 이상 의료기관에 보안 인력을 배치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상주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기습적인 공격을 즉각 차단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에 “비상벨이나 대피 통로 역시 긴급 상황에서 즉각적인 방어 수단으로 작동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의료기관 보안과 안전망 구축 책임을 개별 병원에만 맡기지 말고 국가가 재정을 분담하고 제도를 뒷받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한병원협회(회장 유경하) 역시 5일 성명을 내고 병원 안전관리 책임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지원을 요구했다.
병협은 “의료진이 신변의 위협을 받는 환경은 의료체계 전반의 안정성을 저해하는 요인”이라며 “의료기관 내 위험물 반입 차단 체계를 재점검하고, 안전관리 책임을 의료기관에만 전가하지 않도록 국가 차원의 제도적ㆍ재정적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특별시의사회(회장 황규석)도 같은 날 성명을 통해 “의료진 보호를 위한 법 개정 논의가 지속됐음에도 진료실 내 폭력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며 “위험 상황 대응 체계와 경찰 협조, 안전 인프라 구축을 포괄하는 대책 수립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회장 이의주) 또한 “의료기관 보안 조치가 현장에서 실효성 있게 가동되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며 “야간과 주말 등 소수 인력으로 운영되는 취약 시간대의 의료진 보호 방안과 위급 상황 대응 체계를 전면 재정비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정신건강의학과 현장에서는 중증 정신질환자 관리 체계와 사법ㆍ행정입원 제도의 개선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조근호 회장은 “현행 비상벨이나 대피로 규정은 1차 의료기관에 행정적ㆍ재정적 부담을 주지만 돌발적인 상황 대응에는 한계가 있다”며 “의원급 의료기관이 자체 보안 인력을 갖추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지적했다.
특히 “현재 치료가 절실한 고위험군 환자들이 조기에 개입되지 못하는 제도의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며 “입원실 수가 개선과 함께 외래치료명령제의 실효성을 높이고, 사법입원 등 국가와 지자체가 치료를 지원하는 제도적 정비가 요구된다”고 밝혔다.
다만, 의료계는 이번 사건이 특정 질환 전체에 대한 편견으로 이어지는 것을 경계했다.
대전협은 “처벌과 규제의 대상은 질환 자체가 아닌 폭력 행위여야 한다”고 짚었으며, 김성근 대변인 역시 “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적기에 진료받을 수 있는 안전망을 갖추는 것이 의료진과 환자 모두를 보호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