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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공부는 물론 주먹질도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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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공부는 물론 주먹질도 잘했다
  • 의약뉴스
  • 승인 2008.12.11 00:00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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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나는 중학생이 되었다.

소위 일류 학교라는 명문중학교가 아닌 누구나 지원하면 받아주는 그런 중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초등학교때 어지간히 공부를 안 했으면 그런 학교에 다니게 되었나 하는 후회를 했다.

나의 중학교 시절은 공부 잘하는 것보다는 싸움 잘하는 것이 영웅시 되는 학교였기 때문에 나는 싸움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는 그런 학생이 되어야 했다.

중학교에 와서야 겨우 철이 들어서였을까 나는 공부에 재미를 붙여 열심히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어느새 전교에서 1,2등을 다투는 존재가 되었다.

주먹 쓰는 친구들은 공부 좀 한다는 애들을 이유 없이 괴롭히기 일쑤였기 때문에 내가 학교에서 공부로 버티려면 주먹 쓰는 애들과의 일전도 불사해야 하는 처지였다.

이러한 밀림의 법칙이 존재하는 분위기 속에서 내가 공부에 전념하여 미래의 꿈을 키운다
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나는 매일 저녁 셰도우(혼자하는 가상)복싱으로 나의 주먹을 단련시키기 시작했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들과 싸워 이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정권으로 정확하게 뻗어 치는 원투 스트레이트 왼손과 교차되어 라이트스트레이트가 나갈 때 히프가 돌면서 허리에 힘을 얹혀 동시에 꽂는 정교한 주먹은 무서운 무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단련된 주먹 덕분에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무시 당하지 않고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저녁 격렬한 운동을 마치고 좀 쉬고 있는데 라디오 방송에서 나오는 노랫소리가 참 좋았다. 금세기 전설적인 최고의 테너, 카루소가 부르는 노래 “바다로 가자”라는 곡이었다.

“백구 춤춘다 바다위에서
물결 춤춘다 바다위에서
흰 돛단배도 바다 위에서
바다 그 바다 끝이 없다.
해가 서산을 넘어서 가면
달은 동편에 솟아오네
크고 끝없는 그 바닷가로
나를 불러서 오라는 듯
바다로 가자 바다로 가자
물결 굼실 뛰노는
바다로 가자, 바다로---가자
아! 나는 깜짝 놀랐다.

나의 마음을 한 순간에 송두리째 뺏어 가는 그 노래 그 가수...
나는 황홀해서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모든 스트레스와 미래에 대한 의구심들이 나의 가슴속에서 썰물처럼 빠져 나갔다. 가슴이 시원했다.

아! 그거야! 알았어! 내가 갈 길이야!
나도 나중에 카루소 같은 세계 최고의 테너가 될거야!

나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나는 벌써 세계 최고의 테너가 되어 있었다.
여기는 이태리 밀라노의 라스칼라좌 화려한 오페라 무대 위에서 몸에 착 달라 붙은 턱시도 의상에 전신몸통에서 울려 퍼지는 벨칸토 발성... 현란한 오케스트라의 반주, 극장 구석구석을 파고드는 전율과 판타지! 떠나 갈 것 같은 환호와 박수...

아마 나는 그 엄청난 환희에 그만 기절하여 죽어도 한이 없을 것 같았다.
나는 매일 새벽 달맞이 동산으로 달려갔다.
발성 연습을 하러....
달맞이 동산이 어디던가?
내가 살던 서울 성동구 옥수동 한강을 마주 바라보고 있는 아담한 동산이었고,
아침에 가보면 언제나 그곳엔 나 혼자였으며 나는 아무거리낌 없이 마음껏 목청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3년동안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나는 달맞이 동산을 올랐다. 발성 연습 하러...
그 정다운 산에 올라가서 앞을 내려다 보면 광대한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강은 저 멀리 광주와 광나루 벌판을 가로질러 뚝섬 벌판을 적시며 유유히 흐르다 무수막 강이라 불리는 별명을 붙여서 옥수동 강뚝에 닿으면 한강은 갑자기 물결이 숨가쁘게 소용돌이치면서 청계천 물줄기를 한입에 삼키고 한남동 서빙고를 감돌아 여의도 여울목으로 내달린다.

고요한 한강은 자신의 유구한 역사의 흐름을 아는 듯 모르는 듯 그저 바람소리 물결소리 벗하며 영원히 평화를 노래하는 듯 했다.

어쩌다 여름 저녁에 동산에 올라 내려 보면 뱀꼬리처럼 길게 뻗어나간 강뚝 위에 용산 가는 철로가 아스라이 길게 이어졌는데 한 여름 더위에 지친 마을 사람들이 꽤 많이도 강뚝 선로 주위를 맴돌며 시원한 강바람을 즐길라 치면 어느새 동빙고 쪽에서 장남감 같은 저녁 기차가 하얀 실연기를 날리며 강뚝 철길을 지나가는데 행여 사람들이 다칠세라 딸랑딸랑 종을 치면서 미끄러져 지나간다.

한폭의 아름다운 그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내 머리를 스칠 때 마다 나는 진한 향수를 느낀다.
잠깐! 내가 왜 이리 펜을 들고 있는가에 대하여 이야기 좀 해야겠다.
너무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세상사 좀 차분히 가라앉히고 싶다.

세계 금융위기(Financial crisis) 신용위기(credit crisis) 가치관의 혼돈․왜곡 비대화된 정치논리, 그 앞의 굴복․비굴함, 아부, 빈곤, 고통, 아우성...
그동안 우리는 모두 너무 들떠 있었다.

너도 나도 앞서려고 서두르고 우쭐되고, 과시하고 꼭 그래야만 성이 차는 것인지...
모두 좀 차분히 갈라 앉히고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서 깊은 성찰로써 겸손해지고 성숙해 지면 안 되는 것인가?

모두의 조급증을 풀어 주기 위한 정신문화가 필요하다.
사람들마다의 가슴에 고상한 꿈과 희망을 심어 준다면 아마 그들은 세속의 잡티를 벗어 던지고, 참답고 아름다운 자태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의 온갖 번뇌를 지우고 진정한 유토피아를 꿈꾸는 우리의 이상을 꽃 피우고 싶어 나는 밤 새워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며, 나는 이 글로서 지금 고통 받고 있는 모든 이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고 싶고 그들의 아픔을 같이 나누고 싶고 조금이나마 그들이 위로가 되어서 다시 새롭게 호흡하고 다짐하고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케 하고 싶은 것이다.
다시 달맞이 동산으로 돌아가자.

동산 정상까지 집에서 30분쯤 걸린다.
정상에서 한강쪽으로 70여미터쯤 내려가면 아담한 소파처럼 생긴 화강암 바위가 나를 반갑게 반긴다.

 나는 그 바위에게 뚜나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고 언제나 그 뚜나 바위위에서 노래를 불렀다. 짜증이 날때도 뚜나에 앉으면 마음이 편안해졌고, 피로도 금방 풀렸으며 슬픔도 바람과 함께 사라졌으며, 배고픔도 미움도 고통도 다 사라지는 것이었다.

 내가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방황 할때도 나는 뚜나를 찾았으며 나의 펜팔 여자친구가 찾아 왔을 때도 나는 뚜나를 찾았다.
대학교때 처음 사귄 친구와도 뚜나를 찾았다.

뚜나는 나의 인생에 있어 절대적 존재가 되어 있었다.

뚜나는 나의 꿈과 이상의 표상이었기 때문이다.
내 나이 어릴때 내 입은 가볍고, 바다 위에 떠돌기 나~ 참 원했네~
지금 남천 바라 볼 때에 늘 그리는 것은 그 작은 뚜나 나를 부른다.
아! 아! - 그 뚜나 별이 나를 부른다.
아! 아! - 그 작은 뚜나 나를 부른다.

어느 날 서대문 고모가 찾아와서 나를 보더니 대뜸 “너의 어머니가 폐병에 걸려 각혈 한다더라”며 톡 쏘듯이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망치로 얻어 맞은 것처럼 머리가 띵하며 눈앞이 캄캄해졌다.
나는 그때 특별 장학생으로 뽑혀 입학금, 등록금 일체를 면제 받고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나는 충격적인 생모의 소식에 학교 다니는 것을 포기했다.

담임선생님께서 여러번 나를 만나려고 찾아 왔었으나, 나는 이미 가출 상태였었다. 공부 다 필요 없어, 권투, 운동 노! 세계적 테너? 웃기지마!
나는 다 때려 치고 매일 생모를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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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클럽 2008-12-16 10:51:57
나도 폐결핵 걸려 봐서 아는디 그것 참 심한 병입데다. 그런데 워치께 그걸 이겨내고 지금까지 요셨요잉~~~~

지망생 2008-12-12 18:08:23
어린나이에 가춮까지 하면서 생모를 찾았다는 구절이 가슴 뜨끔한데 ....그때 그 분위기를 더 실감나게 그려줬으면

지나가다 2008-12-11 18:32:23
리얼리티가 있네요. 재미 있을 것 같은데 좀더 자세히 써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