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라디오 방송에서 합창단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듣고 나는 동자동에 있는 나운영 선생님의 자택으로 입단 시험을 보러갔다.
100여명의 응모자들이 모여 들었는데 모두들 들뜬 꿈으로 가슴이 부풀어 있었다.
나의 테스트 차례가 돼서 나는 피아노 앞에 앉으신 선생님 앞에 섰다.
선생님은 어린왕자처럼 얼굴색이 희고 맑았으며, 잔잔한 미소와 함께 풍기는 인상이 너무나 평온한 신사이셨다.
피아노 옆의 작은 테이블 의자에 앉아 계신분이 테스트 심사를 보고 계셨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YWCA 회장을 맡고 계신 유명한 유경손 여사였으며 나운영 선생님의 부인인 것이었다.
“무슨 노래 할까요?” 선생님은 어린 나에게 존댓말로 물으셨다.
나는 “동무생각이요!” 다소곳이 대답했다. 선생님의 두 손이 피아노 건반 위에서 날렵하게 움직이며 전주가 울려 퍼졌다.
나는 심호흡과 함께 노래를 불렀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나 언덕 위에 백합 필적에
나는 흰나비야 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청나 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 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반주하시는 선생님의 손이 얼마나 매끄럽게 움직이는지 나는 노래하며 선생님의 얼굴 표정을 힐끗 살펴보았다.
선생님은 안경 너머로 만족스런 미소를 띄우시며 반주와 함께 행복해 하시는것 같았다.
유경손 여사님도 환하게 웃으시며 나의 노래에 취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그 저명한 선생님의 직접 반주에 맞추어 내가 최선을 다해 노래를 불렀던 그 장면이 새록새록 내 가슴속에 메아리 쳐온다.
나는 테너 파트에 합격 하였고, 그 이후 일주일에 한번씩 동자동 나운영선생님 자택의 넓은 응접실에서 열리는 합창연습에 열심히 참석했다.
연습은 나선생님께서 직접 주관 할 때도 있었지만, 유경손여사께서 많이 지도해 주셨다.
여사님께서는 합창 연습뿐만 아니라, 자신의 여고 학창시절의 이성교제에 대하여서도 이야기 해주셨다. 일본 유학시절 그때 아름다웠던 이성교제와 우정을 나 선생님이 보시는 앞에서도 거리낌 없이 명랑하게 이야기 해주셨다.
단원들은 환호와 함께 박수치며 나 선생님과 함께 환하게 웃었다.
연습 6개월 후 드디어 합창 연주회 일정이 잡혔다.
삼일당 옛날 진명여고 대강당이었다. 대한 합창단은 청소년부와 성인부로 나누어 두 그룹이 있었는데 우리 청소년부는 멘델스존의 종달새와 (성인부와 함께 하는)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중의 원무곡 두 곡이었다.
삼일당을 가득 메운 천여명의 청중들은 합창 연주가 끝날 때 마다 뜨거운 박수와 환호로 화답하는 것이었다.
특히 파우스트 중의 원무곡 합창은 환상적이었다. 공연중 우리 합창단원들도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전율과 함께 솟구쳐 오르는 환희에 취해 있었다. 기쁨과 행복의 절정, 한순간이었지만 나는 그 최고의 경지에 푹 빠져 있었다.
1960년대 그 시절에는 음악회장 2층에서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2층에 자리 잡은 청중들이 공연중간, 미드 타임에 프로그램전단지로 종이비행기를 접어 아래층으로 날리면, 홀 안은 일순간 비행기 비행궤적에 따라 함성이 퍼지면서 웃음바다로 이어지는 것이었다.
나운영선생님께서는 그래도 환하게 웃으시며 순서에 따라 공연에 최선을 다하셨다. 공연1부 합창연주가 끝나자 휴식시간이 있었고, 선생님께서는 우리 전체 단원에게 1인당 지금 화폐로 치면 2만원씩 주시는데 우리는 모두 깜짝 놀랐다.
1960년대 우리나라 경제 형편이 꽤나 어려운 시기였는데 선생님은 우리의 연주회를 위하여 엄청난 경제적 희생을 감수 하시면서 공연을 실현 하시는 것이었다.
선생님의 은혜를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 선생님과 유경손 여사님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지금 생각해 보아도 너무나 존경스럽기 그지없었다.
삼일당 합창공연의 아름다웠던 추억은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내 머릿속에 생생히 살아 있고 영원히 우주 속에 맴돌것 같은 느낌이다.
그저 두 분께 머리 숙여 감사할뿐이다.
경제 발전이 수백배 확대된 작금의 시대에도 옛날 대한 합창단 같이 개인 희생위에 순수 예술 활동을 지향하는 위대한 주관자가 과연 존재 할 것인지! 그저 상상해 볼 뿐이다.
지금은 작고하신 선생님께 엎드려 추모만 드릴뿐이다.
5년 전 대한 합창단의 아름답던 추억을 회상하며 나는 전국 신인 콩쿠르대회 응모작품을 들고 옛날 내가 다녔던 동자동 나운영선생님 자택 의 초인종을 눌렀다.
